메르스가 발생한 2015년 6월.

울호텔 뿐 아니라 관광업계 전체가 메르스의 영향으로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명동을 휩쓸고 다니던 중국인의 물결도 없어졌고 심지어 메르스의 전염력때문인지 행인조차도 많지 않았다.

7층의 한 고객이 열이 있어

확진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객실은 출입금지 되었으나

다행히 메르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은 제주 신라호텔에서 메르스 확진환자가 한명 나와 호텔전체를 폐쇄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초긴장모드였다.

333개의 객실 중 20% 밖에 안차는 상황에서 

메이드 1명이 하루 정비하는 객실이 4방까지 떨어졌다.

처음 회사의 대응은 강제연차소진.

그해는 운 나쁘게도 내가 가진 24개의 연차와

20년근속상 부상 중 하나인 자기개발휴가 10개가 추가되어 34개의 연차가 있었다.

아이들의 봄방학때 이미 10개를 사용해 자기개발휴가를 소진했음에도 팀장은 몇번이고 찾아와 더 쓰라고 달달 볶았다.

나는 나대로 연차를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아침마다 교문에서 열을 측정 해,

38도 이상은 하교시키고 2주등교금지였기때문이다.

팀장은 다른 메이드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며 연차사용을 강요했고 한차례 팀장과의 언쟁이 오간 후에도

남은 연차19개에서 줄지않자 팀장은 만날때마다 째려봤다.

세종호텔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교환근무때도 2.4주 일요일을 쉬게하고 연차로 까서

연차수당을 없앴고 메이드는 객실이 차는 주말에 가족행사가 잡혀도 연차는 팀장까지 싸인나야 윤허해주셨고 정작 회사가 힘들때는 강제소진!

내 연차를 그들이 주물럭거렸다

심지어 몇몇 부서는 연차를 제출케하고 1시간 늦게 출근해 업무를 하게 하거나 대체휴무와 뒤섞어 연차수당을 안주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다음 회사의 대응은 무급휴가와 타부서 '헬퍼'였다.

예상대로 무급휴가는 2명뿐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 메이드들의 연차를 4개정도만 남기고 강제소진 시킨 후, 타부서 직원들의 연차소진을 위해 헬퍼라는 이름으로 호텔의 여러 부서에 업무지원으로 보내졌다.

커피숍, 부페. 중식당 홀써빙, 

식당별 펜츄리(설거지),

사무실 남자직원은 컨시어지(벨맨)로.

발령도 없이 여기저기 보냈음에도 불법은 아니었고

앞으로도 회사의 필요에 따라 직원들의 소속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부릴것이 뻔했지만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내경우엔 부페 써빙이었다.

이때 노조에서 '보건증'을 문제로 제기했다

업장 직원의 경우 음식을 만지는 부서라 반드시 보건소에서 발급하는 보건증을 소지해야 하는데 

룸메이드는 전원 보건증이 없었다!

퍼블릭파트 신설때 그랫듯이 

회사는 항상 준비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했다

세종노조의 헬퍼 의의제기에 당황한 회사는 근무중에 가까운 중구보건소로 보건증을 만들러 보냈다.

그러나 보건증이 발급되는 시간은 신청5일 후.

세종노조는 업무지원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었으나 보건증없이 불법근무는 않겠다고 항의했다.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이미지: 사람 15명, 사람들이 서 있음

이미지: 사람 1명, 서 있음, 전화, 셀카,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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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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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번연속 촉탁분들과 층짝이 되었다

회사에선 3개월 계약직만 고용해, 계약을 연장해 쓰고

촉탁이라고 불렀으며 그해엔 10명이나 됐다

정년퇴임 후 일하는 분도 있어 대체로 연령이 높았고

그분들은 정규직전환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급여가 적었으므로 정직인 내가 15객실 배당받는데 비해 13객실만 배정했다.

세종 룸메이드는 정직, 전환배치된 정직, 촉탁

이렇게 3계급이 있는 셈이었다.

가장 불만인 정직 중 한분은 전환배치된 내게

"같은 일을 하는데도 지희씨랑 나는 월급이 다른데

불공평하다고 생각지 않느냐" 고 대놓고 물었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언니도 10년정도 일하셨겠으나

전 21년째 근무하니까 당연히 차이가 있어야죠"

정도로만 대답했으나

그녀는 끝까지 자신을 기준으로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을 지급해야한다는 하향평준화를 주장했다

박춘자위원장님은 그분에게

"반대입장으로 20년을 근무해도 같은 일을 하니 신입직원과 같은 임금을 받아 평등해서 만족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 지?"물어보라 반문했다

타부서에서 20년넘게 근무하다가 전환배치되어 룸메이드가 된 어린(?) 나와 나이는 많으나 근무년수가 적은 기존의 룸메이드와 이 문제가 가장 큰 장벽이라 느꼈다

나와 짝이 된 촉탁분들은 연륜이 있으셔서인지 그런 내색없이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특히 마지막 촉탁짝이었던 분은 땀을 뻘뻘흘리며 늦게 일을 끝마치는 내게 항상 따끈한 녹차를 내미셨다

더운데 뜨거운 차라니...적응이 안되었으나 

나중에는 따끈한 녹차가 피로감을 덜어주고 

정신없는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아침 밤새 앓아 사색이 되어 출근하신 그분을

락카에서 5층 사무실까지 부축해 올라갔다.

당시 팀장의 룰은 아파서 결근하려면

일단 출근해서 상태를 보여주고 집으로 들어가라 할 정도로 룸메이드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근을 위해 출근한 나이든 메이드가 너무도 안타까왔는데 그분은 페렴이 심각해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드셨고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계약기간을 못채우고 퇴사하셨다.

고된 룸메이드일은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과 디스크등

질병과 사고가 많았다

2015년 6월

메르스가 시작된 그해.

고열때문에 그분도 메르스 검사를 했으나 이상없어

부축했던 나까지 안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메르스 유행당시 호텔경기가 바닥을 치자

회사는 가장 먼저 10명의 촉탁을 계약일자에 맞춰 

순서대로 전원 계약해지해 버리고 말았다.

팀장 앞에서는 할말 못하던 촉탁들이 여자락카에서는

"쓰고 버린다"

"더러운 세종호텔"

이라며 욕을 하거나 유니폼을 패대기치며 한명한명 계약해지당하고 나가는 것을 그 여름내내 아프게 봐야했다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이미지: 사람 5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이미지: 사람 4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테이블, 음식

이미지: 사람 1명

이미지: 사람 4명,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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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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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숙한 고객이 두고간 물건을 습득물이라고 한다.

습득물에는 실제 고객이 깜빡 잊어버린 것과 

버린 것의 두종류가 있다.

내가 2년 7개월동안 봐온 습득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여러나라의 과자,초콜렛.차종류, 사발면, 캔음료.김.

냉장고안의 김치,젓갈. 

화장품사고 받은 샘플.

세탁해서 널어둔 속옷.

욕실에는 바스타월.치솔.면도기,생리대

흰 시트위에 흰면티.

스마트폰 충전기.

케리어

아가베게. 이유식스푼, 보온병.나무젓가락.일회용컵

금고안의 부러진 선글라스.모자.부채

책. 잡지, 만화. 

영자신문. 일본신문. 중국신문

서울가이드북. 맛집 리스트

약. 비타민. 홍삼세트. 

수많은 술

담배. 일회용라이터

개중에는 선물도 있다.

일본 고객들은 과자,캔디.초콜렛.커피티백을 정성스럽게 하루에 하나씩 베개에 놓기도하고 체크아웃때 메모와 함께 모아놓고 가는 경우가 많다.

쇼핑한 새옷만 입고 갔는지 입고 온 옷을 송두리째 벗어두고 'IT'S FOR YOU' 라는 메모를 올려놓거나,

'받아주세요'라는 일본어로 적힌 메모와 함께 

작은 손수건이나 필기구, 자신이 오래쓴 가죽가방이 있고,

한국어를 그려 매모지에 '편히 쉬고 갑니다'라는 철자틀린 감사글과 함께 캔맥주나 소주를 놓고 가는 고객도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습득물은 퇴근길에 층 마스터키를 반납하며 사무실에 접수한다

현금이나 휴대폰등 귀중품은 고객이 직접 저장한 정보로 연락해 빠른조치를 취하지만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 습득물들은 보관되다가 1년에 한번 

객실 2개에 메이드 이름을 적어 안찾아간 습득물 중에 자신이 가지고 싶은 물건은 가지고 나머지는 쓰레기처리하는것으로 털고간다

나의 첫번째 경위서도 습득물 사건이었다.

냉장고에 손가락 한마디정도의 화장품인듯 보이는 케이스를 보고 초보메이드는 샘플로 알았다

중국인들은 마스크팩이나 화장품을 워낙 많이 쇼핑했고

객실마다 샘플 화장품이 화장대나 바닥에 잔뜩 굴러다녔기때문에 그 흔한 샘플로 보였다.

쓰레기통에 버리기는 아까워 핸드크림 대신 한두번 쓸까해 메이드카트위에 던져놓고 잊었다.

집에 돌아와 사무실에서 냉장고안에 화장품 봤냐길래

카트에 있을거라고 했더니

그 문제적 샘플이

고객의 피부타입을 분석해 개인에 맞춰 주문제작하는 고가의 재대혈 줄기세포로 만든 화장품이라는 것이었다!

뜨아!

이름도 적혀 있었다는데 초보메이드는 뭔 중국한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에 없었다

여성이면서도 사실 난 그런게 있는 줄도 몰랐다.

초보 메이드는 너무놀라 기절 초풍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버리지는 않아서 무사히 고객의 손에 전해졌다.

그러나 초보메이드는 몰라본 죄로 경위서를 써야했다.

교환에서 근무하면서 20년동안 한번인가 써 본 경위서를 

메이드가 되어선 한달에 한번이상 썼다

내잘못도 있었겠지만 고객의 컴플레인은 없었으나

밤사이 안팔린 객실을 야간당직 지배인이 점검해서 지적되면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경위서를 쓰게했다

처음에는 중죄라도 지은 듯 달달 떨면서 썼으나

경위서 수집이 취미민 팀장이 전환배치 되 온 세종노조 조합원인 내게 더 야박한 듯해 이 따위 경위서로 나를 해고라도 시키랴싶어 오기가 나서 팀장에게 따지는 러브레터를 열심히 적어 드렸다.

(사진은 드림콘서트가 끝난 후 외국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음반판매량을 늘리려 다량 구매만 하고 버리고 가는 수십장의 CD와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기만하고 버리고 가는 인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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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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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공장 모자 건으로 나를 포함한 메이드와 퍼블릭 조합원 징계는 조주보씨의 징계에 비하면 해프닝에 불과하다.

영화 '카트'에 출연한 배우 조주보씨는 내가 교환으로 근무할 당시 프론트에서 가장 표창장을 자주 받는 직원이었다.

타고난 자상함과 다정다감함 그리고 오지랖이 고객들의 THANKS LETTER로 이어졌고, 세종호텔 최고의 프론트 클럭에서 판촉지배인으로 승승장구하며 실력을 발휘하던 참이었다.

20대의 내게 곰돌이 푸우같은 그는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은 남자였으나 가질 수 없는 남자.

경리과 선배의 남자였다.

그런 그가 김상진이라는 친구를 잘(?) 만나 

노조 부위원장을 맡아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자,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판촉지배인을 신입직원들이 주로 일하는 벨맨으로 전환 배치시켰다.

이후 38일의 파업을 주도하고 회사의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지속하자, 20년 이상 경리업무만을 해왔던 부인도 룸에이드로 전환 배치돼 결국 해고까지 당했다. 당시 조주보씨의 부인은 무릎 관절염 수술을 앞두고 있어 육체적인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세종호텔은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내버렸던 것이다!

내가 메이드로 전환 배치되어 교육받고 초보 메이드로 우왕좌왕하던 시기의 아직 추웠던 어느날.

조주보씨는 맨손으로 피켓을 들고 선전전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안쓰러워 면장갑을 건냈는데, 파업이후 호텔의 곳곳에 설치한 CCTV로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회사의 눈에 들어간 것이다

몇 백원 하지 않는 회사 물품(면장갑)을 개인이 임의대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돼 1개월 정직(재심 감봉 4개월)이라는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조주보씨의 건은 개인적으로 세종호텔의 가장 찌질하고 치졸한 징계라고 기억된다

이후 회사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 그에게 맡겼다. 호텔 정문에서 300m쯤 떨어진 인천공항버스 정류장까지 세종호텔로 오고 나가는 고객들의 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호텔정문 앞에서 근무하며 호텔 앞 선전전을 돕는 그를 더 멀리 보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조주보씨는 연봉제가 도입되고 2013년부터 4년 동안 50%가까이 임금을 삭감당해 두 아이의 외벌이가장으로 경제적으로도 큰 어러움에 처해 호텔 외부에서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항상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남녀 누구나 서스름 없이 안아주던 그의 따뜻함은

민주노조를 사수하며 열심히 투쟁을 이끌고 있는

김상진 전위원장과 고진수 전위원장보다 

세종노조 조합원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마음의 지도자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그의 선택에 조합원은

소중한 분을 놓아드려야하는 아쉬움과 함께

조주보씨의 앞길에 그리움과 화이팅을 보냅니다.

♡ 사랑합니다 ♡



이미지: 사람 2명

이미지: 사람 4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이미지: 사람 1명, 앉아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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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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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3명의 룸메이드 중 세종노조 조합원 8명만 

김치공장모자를 벗어버리고 근무를 시작한 것이다.

3명의 퍼블릭파트와 함께!

자신있게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지시에 NO라고 거부하는 게 쉽진 않았다.

'모자벗기' 항의 첫날!

가슴이 콩닥콩닥해 차마 못 벗고 있을 때 고진수 노조위원장이 층마다 현장순회를 하며 스스로 모자를 벗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나중에....라고 자신없어 하는 내게 고진수위원장은

지금...이라며 내가 모자를 벗는 걸 보고야 자리를 떴다

팀장의 엄포에도 모두 입을 맞춰

"노조의 결정이니 할말은 위원장에게 하시라"대답하고

우리는 행동에 들어갔다

층에서 짝의 따가운 시선과 질문을 받고 근무하다가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서야 조합원들이 모여보니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낼 자신감이 생겼다.

직원식당에서는 전직원과 팀장, 총지배인의 눈총까지

받아야했지만 어떤일에나 처음이 어려운 법.

동료메이드들은 김치공장모자을 안 쓴 세종노조와

같은 테이블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회사는 개별적으로 하루에 한장씩 업무지시서를 보냈고 

우리는 하루 한번씩 수령했다는 사인을 해 주었다.

초반에는 팀장이 층으로 올라와 

'지희씨, 이러지말자'고 회유도 했다가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고 협박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아래직원들에게 수령싸인만 받아갔다.

피말리는 기싸움.

그러기를 53일

우리의 행동이 심각한 해고사유라도 되는 듯

세종노조와 얘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던 동료들의

기대(?)과 달리 징계위에서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 근신 3개월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박춘자위원장님만 1개월 감봉되었다

징계 후에 바로 김치공장모자를 벗게하면

세종노조 투쟁의 결과가 되는 모양새가 싫었던 회사는

조금 더 유지시키다가 7월이 되어서야 스리슬쩍 모자대신 새스카프를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명의 조합원을 잃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그녀는

내가 룸메이드로 발령난 후, 자신과 식사하는 동료가 있다는 이유로 한번도 조합원의 커피타임이나 노조사무실에서조차 본 적 없었던 분이었다

파업도 끝까지 함께해온 분이셨음에도 

새롭게 회사의 업무지시를 어기는 일이 힘겨워

차라리 노조탈퇴를 결정해버렸나보다.

프론트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노조탈퇴하는 걸 봐와서인지 더이상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사람들이 서 있음, 인파, 실외

이미지: 사람 6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이미지: 사람 2명, 실외

이미지: 사람 3명, 웃고 있음,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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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호텔에서 근무한 경력자들에 의하면

룸메이드 머리에 뭔가 쒸우는 호텔은 없단다

스카프역시 우리파업당시 2년계약으로 온 총지배인이 당시 인기TV드라마에서의 레이스 스카프가 예쁘다고 우리호텔 메이드에게 쓰게한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흘러내리는 스카프를 고정하기위해 실핀을 꽂는 등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그 스카프 대신 지급한 김치공장모자!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했고

(회사는 그걸 노렸겠지만)

모자의 앞부분 챙이 침대헤드나 거울등에 툭툭 부딪쳐 업무를 방해했으며

무엇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룸메이드들에게 모자안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푹 젖어 피부가 약한 사람의 경우 염증을 일으켰고 심한 사람은 탈모까지 왔다

룸메이드가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회사에 아무도 없는 듯했고 심지어 죽든살든 

신경쓰지 않는 것만 같았다

기온이 18도이상 올라가는 3월즈음부터는

모자안 온도는 찜질방수준이었다

룸메이드들은 모자에 대해 계속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의'라는 것도 미팅시간에 전체 메이드들은

항상 박춘자위원장님과 세종노조의 입만 쳐다보았다

어쩌면 회사말 잘듣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세종노조를 탈퇴하라는 팀장말도 잘듣고 사측노조에 가입하라는 지시도 잘 따랐을것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항상 요구해야 할때 침묵했다

회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싶어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한 건 항상 회사였다.

내경우에도 업무지시가 아닌 세종노조를 탈퇴하라고 압박한 자도 당시의 팀장이었고 

그런 지시는 따를수가 없어 노조에 알리겠다고 

했더니 두번다시 그껀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본인이 용기가 없다면 노조를 앞세우고

개인은 머릿수만 채워줘도 노조는 힘을 얻을텐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회사에 찍히는 게 그렇게 두려웠나?

4월의 어느 미팅 날 팀장이 모자를 벗어도 좋다라고 말했으나 바로 뒷날 부서장과의 협의없는 단독결정이었다고 핑계대고 취소한다고 했다.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업무와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씌운 회사가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스스로 철회할 수 있기는 할까?

분노와 실망속에 세종노조는 회사에

'룸메이드에게 업무와 어울리지않는 김치공장 모자를 쓰게할 이유가 전혀 없고 우리 조합원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2차례 보냈다

락카에서 전체 룸메이드들은 김치공장 모자에 대해 분노했지만 이름만 노조였지 아무것도 요구하지않는 연합노조는 이럴때일수록 조용했고

회사는 묵묵부답

답이 없는 회사를 향해 우리는 '모자벗기'로 항의했다.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이미지: 사람 3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7명, 신발,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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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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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수는

'몌이드는 눈도 좋아야하고 

냄새도 잘 맡아야하고

소리에도 민감해야 한다' 고 말하곤 했다

객실에 들어갔을 때 담배냄새도 캐치해야하고

환기팬이나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평소같지 않다거나

객실의 조명기구들이 다 켜있는지 

욕조나 샤워커튼에 머리카락이 붙어있진 않는지

오감이 예민해야 한다는 의미였던 거 같다.

내경우엔 오감뿐아니라 실수까지 골고루 발달했다

처음 한 실수는 잊혀지지 않게 마련이다.

사드배치 이전이라 명동은 중국인 물결

초보 메이드는 기본에 충실하게 쓰레기통 뿐 아니라

TV장, 나이트테이블등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쓰레기를 주워가며 야무지게 치우던 시기였다

중국인들의 특성상 쓰레기통이 있어도 안넣고

바닥에 버리는 일이 많다

다음날 복도에서 만난 중국고객

배나온 아저씨가 상반신 탈의에 맨발로

"찐따이짱하마른따이운똥하"

멀뚱히 바라보는 내게 뭔가 말하더니

잠시 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전날 ××××호에서 빨대 버리셨어요?"

"네. 버렸지요"

중국고객이 복도에서 얘기한 건 빨대였다ㆍ

자신이 사용하던 소중한 빨대를 메이드가 버렸으니

체크아웃하는 12시까지 빨대를 가져오라는 요구였다

전날 그 고객의 객실 여기저기에 던져있는 휴지를

지뢰찾기하듯 치우면서 나뒹굴고 있는 빨대를 버린 기억이 났다

일반빨대보다는 굵은

공차에서 파는 밀크티의 펄(개구리알?)을 빨아먹기 위해 쓰는 그 빨대였다고 얘기하니

사무실의 조합원님이 찾아보겠노라 했었으나

일요일이고 샵을 찾기가 어려웠는지

1만원을 드리고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해 주었다

다행히 주말에 팀장이 근무하지 않아

사무실 선에서 잘 무마해주었고

그 고객도 더이상 컴플레인을 하지 않아

그 건은 징계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팀장이 워낙 경위서를 남발하던 자라

또 한장의 경위서를 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초보메이드는 진땀이 뻘뻘났으나

좀 지나고 나서야 웃을 수 있는 헤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어느 실수나 마찬가지듯이

그 헤프닝에서도 나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고객들의 경우 마시다 남은 차,

마시다 남은 콜라등은 절대 버려서는 안된다.

체크아웃 한 후에 찾아가는 경우까지 있기때문이다

반면, 일본인의 경우는 마시다 남은 캔음료를

반드시 치워주어야 한다

그들은 메이드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고 여긴다

교환에서 근무할 때는 일본어, 영어로 

그들과 대화만 통하면 문제 없었으나

룸메이드는 나라별 특성에 따른 대처법도 알아야 했다

내경우는 빨대값 1만원으로 끝났으나

룸메이드 재직당시 이기원 조합원은 할랄음식을 버려 30만원을 물어준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 일이후로는 나도 다른 메이드선배처럼

호텔에서 제공한 쓰레기통만 비우고

나이트테이블이나 TV장위의 쓰레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병이 하나 생겼다

빨대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병 >.<



이미지: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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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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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가 되어 나를 조금 당황하게 만든 건 호칭이다.

룸메이드 내부에선 직급에 관계없이

연령에 따라 '언니'라고 부른다

사실 울엄마연배의 촉탁직원도 있어 어색했고

'선배'나 '씨'라는 호칭이 더 정중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룸메이드의 룰을 따르기로 했다

박행엽언니는 신라용역이었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특급호텔 룸메이드는 용역이다

행엽언니가 근무했던 신라에 비해 규모도 작고 

체계도 잘 안잡히고 

원칙도 불분명한 우리호텔을 지원한 이유는

정직! 

정직이 되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2년의 계약직 생활이 끝나고 정직면접을 봐야했지만

회사는 미루고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당시 운좋게도 회사는 노조와 임금협상을 미루고미뤄 기한을 넘기고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까지 깨진 후 

세종노조는 합법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의 여러이슈 중에서도 

계약직의 정규직화 약속이행이 있었다.

처음이라 어설프지만 의지충만했던 파업!

38일동안의 호텔 로비점검 투쟁으로

복직후 행엽언니는 룸메이드파트에서 계약직 2년을 넘긴 박정희언니, 김인희언니와 함께 정직이 되셨다.

행엽언니는 당신손으로 정직을 쟁취하신 거다!

아쉬운 점은 정직이 된 지 겨우 4년 만에 정년퇴임.

20년 넘는 행엽언니의 메이드 생활 중

정직으로 근무한 건 오로지 세종호텔에서의 4년이 전부인 셈이다.

아쉽고 아쉬운 남은자들과는 달리

행엽언니는 정직으로 은퇴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루아침에 메이드로 발령난 내게 항상

"잘하고 있어" 라고 다독여주시고

시간 날 때마다 내층에 오셔서 체크아웃방 베드를 알게모르게 해 놓고 가신

나의 최고의 은인님!

본인의 몸도 좋지 않으셨음에도

언제나 여유와 배려를 잊지않으셨던

나의 선배님!

미팅시간에 능수능란하게 말로만 일하는 메이들에게 

"입 다물어"라고 호통치는 유일한 여장부!

내가 행엽언니와 일한 건 겨우 6개월.

그 시간들이 너무 짧아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 운좋게 6개월이라도 그런 대선배와 일할 수 있었다는 게 영광스럽기도 하다.

매일아침 8시.

메이드들의 티타임에서 우리는 행엽언니의 빈자리를 한동안 견뎌내야했다.



이미지: 사람 2명,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중, 음료, 테이블, 음식

이미지: 사람 1명, 웃고 있음, 앉아 있는 중, 실외

이미지: 사람 2명, 신발,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웃고 있음

이미지: 사람 1명, 서 있음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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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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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 차현숙. 박정희언니는 룸메이드파트에서 퍼블릭파트로 전환배치된 것이야말로 신의 한수라고 하신다.
누구나 자신이 오랫동안 하던일에서 다른 일로 변경되면
적응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다
햇수로 3년째인 지금도 퍼블릭파트는 이른 출근시간으로 힘겨워하신다
6시에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셔야하기 때문에 저녁 늦게까지 일정이 잡히면 부담스럽기도히고 피곤해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한수라고 하시는 이유는?
룸메이드파트에서 일했었을 때는 층에만 있었으므로
객실과 복도가 행동반경의 대부분이었으나
현관, 복도, 층별 화장실. 흡연실등 퍼블릭파트는
거의 호텔 대부분을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세종노조가 아닌 전직원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팀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기원, 차현숙, 박정희언니를 룸메이드에서 내쫓았을 때는 결코 계산에 넣지 못한 부분일것이다.

.이 세분은 근무하시면서 무노조, 연합노조 분들과
동료로 대화하시며 서종노조의 투쟁도 전하고
주명건이사장이 호텔에 오는 세종포럼 및 모임일정은 기본이고 각부서별 근황, 회사분위기등을 전방위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종노조 최고의 입체적인 연락병이자
호텔에서 일하는 용역을 포함한 전직원들의 상담역핣까지 톡톡히 해주시게 되었다.

나또한 시간이 지나자 전환배치의 장점들이 보였다.
교환실은 섬이었다
통신실이 같이있어 직원들에게도 통제구역이었다
직원비상연락망은 개인정보이기도 했다
같은팀인 프론트와 벨직원들은 우리를 알았지만
타부서 직원들은 우리 얼굴도 거의 몰랐다
나는 목소리로만 20년을 세종호텔에 존재한 셈이다.
한번은 직원식당의 직원 한분이 식당출입구까지 따리와
"신입사원이라 잘 모르나본데 잔반 남기면 안되요"라고
말했는데 그해 나는 이미 15년차를 넘길 무렵이였다

그래서 노조의 소식은 김상진위원장님이 일부러
교환실에 들러 전해주지 않으면 거의 몰랐다
요즘처럼 텔레그램과 카톡 단체방이 없었던 때는
노보만으로는 공감하기 더 힘들었더랬다.
마지막 교환직원 3명 남았을 때에는
2명이 세종노조를 탈퇴하고 사측노조에 가입해
교환실에 혼자 세종노조라 나는 '섬'이었다

룸메이드파트는 조합원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팀이고 근무스케줄이 교대근무의 교환과는 완전 달랐다
교환실의 퇴근이 3시 30분이거나 11시여서
총회연락받고 김상진위원장님께 연락해보면
항상 끝난 시간이어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룸메이드파트의 퇴근은 5시라
집회를 해도 총회를 해도 언제든 결합할 수 있어
동지들과 함께할 수 시간이 이전보다 휠씬 많아졌다.

처음부터 용기가 나지는 않았으나
메이드로 15방의 세팅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난 후
나또한 선전전, 집회, 총회 참석을 통해
노조의 집회신고 한번이라도 내고
선전전 한두시간이라도 힘을 보태고
집회에 연대오는 동지들과도 우정을 쌓아 나가게 되었다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듯이
나같이 무지한 자도 서로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김인희언니가
우리 박춘자언니가
우리 김린희언니가
우리 이기원언니가
우리 차현숙언니가
우리 박정희언니가
우리 김상진언니가
웃을 수 있는 그런 동지가 되어드리고 싶다
아!
인선이언니, 광선이 언니,기수언니.종혁이. 진수,
진정한 막내 진황이도 사랑해♡



이미지: 사람 3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모자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텍스트

이미지: 사람 8명,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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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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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할때 트레이너들이 이런 말을 하곤한다
'3개월을 버티면 몸이 변한다!'
일단 초보자라도 운동을 늘려가다보면
몸이 그 운동에 적합하게 적응한다는 의미일게다
어차피 룸메이드도 몸이 하는 일이라면
3개월을 버틸 수 있다면
나도 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개월동안
처음 내게 배정된 객실수 5개부터
거의 1주일에 하나씩 늘어 15개가 되었다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자신없고 공포스러워 새벽 3~4시에 잠을 깰 정도였으나
어쨌든 3개월부터는 15개씩 꽉꽉 채우게 됐다

내게 할당된 객실이 15개지만
그중 체크아웃으로 새상품 만드는 방이 10개믄 죽음이고
5개 미만이믄 널럴한 편이다.
타호텔은 트리플룸이나 투룸스타일의 스위트룸은
1.5개 또는 2방 정비한 것으로 계산해준다는데
세종호텔은 방타입에 상관없이 1개다.
한 층전체가 베드3개인 트리플룸이 대부분인 4층에서
트리플 객실 3개 체크아웃이던 날.
마치고 락카 내려오니 퇴근시간 1시간 지난 6시였다
그렇다고 연장수당을 주는 일은 없다

내가 발령난 날
세종호텔엔 퍼블릭이라는 새로운 파트가 생겼다.
신설파트에 다들 의문스러워하던 그자리.
나와 달리 룸메이드로 입사해 10년이상 일해오던
세종노조 이기원,차현숙,박정희씨가 전환배치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객실부서내 이동이라는 나와 달리
객실부에서 총무부 소속으로 부서이동까지 되었다

기존에 호텔의 복도.공용화장실.현관등
객실을 제외한 모든 호텔청소를 외부용역에 맡겨왔으나 회사가 정직원인 퍼블릭 세분에게 그 일의 일부를 맡겼다
아무준비없이 신설팀을 발령 내자
퍼블릭 세분은 유니폼, 사무실 등을 당당히 요구했다
총무팀은 퍼블릭팀의 요청대로 허겁지겁 유니폼부터 히트텍내복,사무실, 책상, 청소용품을 사대기 바빴다

너무도 당당히 요구하는 퍼블릭의 요구가 괘씸했을까?
퍼블릭의 주장대로 복도 청소원의 옷을 입혀도
빛나는 미모가 죽질않으니 시기질투해서일까? 
룸메이드 33명 중10명의 세종노조 조합원들이 회사의 부당함이 있을 때마다 미팅시간에 똘똘뭉쳐 항의하곤 하니 회사는 그 결속을 깨고 싶었던 것일까?
회사는 퍼블릭팀에 위생모자를 쓰게 했고
퍼블릭팀이 위생모자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자
범위를 확장해 룸메이드에게까지 위생모자를 쓰게했다

우리호텔 주방에서도 쓰지않는 그 위생모자는 
신비한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김치공장 모자인듯
빵집주방 모자인듯 한 그 모자를쓰는 것만으로도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마법!
회사는 퍼블릭을, 룸메이드를, 아니 세종노조를 
길들이기 위해 또는 기죽이기 위해
업무와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쒸운 거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세종노조가 아닌 메이드들은 그 원망의 화살을
모자를 쒸운 회사가 아닌 세종노조에게 돌리는 듯했다
'너네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보는거야'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2명, 음식,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음식을 먹는 중, 음식, 실내

이미지: 사람 1명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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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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