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텔에서 근무한 경력자들에 의하면

룸메이드 머리에 뭔가 쒸우는 호텔은 없단다

스카프역시 우리파업당시 2년계약으로 온 총지배인이 당시 인기TV드라마에서의 레이스 스카프가 예쁘다고 우리호텔 메이드에게 쓰게한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흘러내리는 스카프를 고정하기위해 실핀을 꽂는 등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그 스카프 대신 지급한 김치공장모자!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했고

(회사는 그걸 노렸겠지만)

모자의 앞부분 챙이 침대헤드나 거울등에 툭툭 부딪쳐 업무를 방해했으며

무엇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룸메이드들에게 모자안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푹 젖어 피부가 약한 사람의 경우 염증을 일으켰고 심한 사람은 탈모까지 왔다

룸메이드가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회사에 아무도 없는 듯했고 심지어 죽든살든 

신경쓰지 않는 것만 같았다

기온이 18도이상 올라가는 3월즈음부터는

모자안 온도는 찜질방수준이었다

룸메이드들은 모자에 대해 계속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의'라는 것도 미팅시간에 전체 메이드들은

항상 박춘자위원장님과 세종노조의 입만 쳐다보았다

어쩌면 회사말 잘듣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세종노조를 탈퇴하라는 팀장말도 잘듣고 사측노조에 가입하라는 지시도 잘 따랐을것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항상 요구해야 할때 침묵했다

회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싶어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한 건 항상 회사였다.

내경우에도 업무지시가 아닌 세종노조를 탈퇴하라고 압박한 자도 당시의 팀장이었고 

그런 지시는 따를수가 없어 노조에 알리겠다고 

했더니 두번다시 그껀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본인이 용기가 없다면 노조를 앞세우고

개인은 머릿수만 채워줘도 노조는 힘을 얻을텐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회사에 찍히는 게 그렇게 두려웠나?

4월의 어느 미팅 날 팀장이 모자를 벗어도 좋다라고 말했으나 바로 뒷날 부서장과의 협의없는 단독결정이었다고 핑계대고 취소한다고 했다.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업무와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씌운 회사가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스스로 철회할 수 있기는 할까?

분노와 실망속에 세종노조는 회사에

'룸메이드에게 업무와 어울리지않는 김치공장 모자를 쓰게할 이유가 전혀 없고 우리 조합원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2차례 보냈다

락카에서 전체 룸메이드들은 김치공장 모자에 대해 분노했지만 이름만 노조였지 아무것도 요구하지않는 연합노조는 이럴때일수록 조용했고

회사는 묵묵부답

답이 없는 회사를 향해 우리는 '모자벗기'로 항의했다.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이미지: 사람 3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7명, 신발,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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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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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수는

'몌이드는 눈도 좋아야하고 

냄새도 잘 맡아야하고

소리에도 민감해야 한다' 고 말하곤 했다

객실에 들어갔을 때 담배냄새도 캐치해야하고

환기팬이나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평소같지 않다거나

객실의 조명기구들이 다 켜있는지 

욕조나 샤워커튼에 머리카락이 붙어있진 않는지

오감이 예민해야 한다는 의미였던 거 같다.

내경우엔 오감뿐아니라 실수까지 골고루 발달했다

처음 한 실수는 잊혀지지 않게 마련이다.

사드배치 이전이라 명동은 중국인 물결

초보 메이드는 기본에 충실하게 쓰레기통 뿐 아니라

TV장, 나이트테이블등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쓰레기를 주워가며 야무지게 치우던 시기였다

중국인들의 특성상 쓰레기통이 있어도 안넣고

바닥에 버리는 일이 많다

다음날 복도에서 만난 중국고객

배나온 아저씨가 상반신 탈의에 맨발로

"찐따이짱하마른따이운똥하"

멀뚱히 바라보는 내게 뭔가 말하더니

잠시 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전날 ××××호에서 빨대 버리셨어요?"

"네. 버렸지요"

중국고객이 복도에서 얘기한 건 빨대였다ㆍ

자신이 사용하던 소중한 빨대를 메이드가 버렸으니

체크아웃하는 12시까지 빨대를 가져오라는 요구였다

전날 그 고객의 객실 여기저기에 던져있는 휴지를

지뢰찾기하듯 치우면서 나뒹굴고 있는 빨대를 버린 기억이 났다

일반빨대보다는 굵은

공차에서 파는 밀크티의 펄(개구리알?)을 빨아먹기 위해 쓰는 그 빨대였다고 얘기하니

사무실의 조합원님이 찾아보겠노라 했었으나

일요일이고 샵을 찾기가 어려웠는지

1만원을 드리고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해 주었다

다행히 주말에 팀장이 근무하지 않아

사무실 선에서 잘 무마해주었고

그 고객도 더이상 컴플레인을 하지 않아

그 건은 징계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팀장이 워낙 경위서를 남발하던 자라

또 한장의 경위서를 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초보메이드는 진땀이 뻘뻘났으나

좀 지나고 나서야 웃을 수 있는 헤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어느 실수나 마찬가지듯이

그 헤프닝에서도 나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고객들의 경우 마시다 남은 차,

마시다 남은 콜라등은 절대 버려서는 안된다.

체크아웃 한 후에 찾아가는 경우까지 있기때문이다

반면, 일본인의 경우는 마시다 남은 캔음료를

반드시 치워주어야 한다

그들은 메이드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고 여긴다

교환에서 근무할 때는 일본어, 영어로 

그들과 대화만 통하면 문제 없었으나

룸메이드는 나라별 특성에 따른 대처법도 알아야 했다

내경우는 빨대값 1만원으로 끝났으나

룸메이드 재직당시 이기원 조합원은 할랄음식을 버려 30만원을 물어준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 일이후로는 나도 다른 메이드선배처럼

호텔에서 제공한 쓰레기통만 비우고

나이트테이블이나 TV장위의 쓰레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병이 하나 생겼다

빨대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병 >.<



이미지: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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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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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가 되어 나를 조금 당황하게 만든 건 호칭이다.

룸메이드 내부에선 직급에 관계없이

연령에 따라 '언니'라고 부른다

사실 울엄마연배의 촉탁직원도 있어 어색했고

'선배'나 '씨'라는 호칭이 더 정중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룸메이드의 룰을 따르기로 했다

박행엽언니는 신라용역이었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특급호텔 룸메이드는 용역이다

행엽언니가 근무했던 신라에 비해 규모도 작고 

체계도 잘 안잡히고 

원칙도 불분명한 우리호텔을 지원한 이유는

정직! 

정직이 되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2년의 계약직 생활이 끝나고 정직면접을 봐야했지만

회사는 미루고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당시 운좋게도 회사는 노조와 임금협상을 미루고미뤄 기한을 넘기고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까지 깨진 후 

세종노조는 합법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의 여러이슈 중에서도 

계약직의 정규직화 약속이행이 있었다.

처음이라 어설프지만 의지충만했던 파업!

38일동안의 호텔 로비점검 투쟁으로

복직후 행엽언니는 룸메이드파트에서 계약직 2년을 넘긴 박정희언니, 김인희언니와 함께 정직이 되셨다.

행엽언니는 당신손으로 정직을 쟁취하신 거다!

아쉬운 점은 정직이 된 지 겨우 4년 만에 정년퇴임.

20년 넘는 행엽언니의 메이드 생활 중

정직으로 근무한 건 오로지 세종호텔에서의 4년이 전부인 셈이다.

아쉽고 아쉬운 남은자들과는 달리

행엽언니는 정직으로 은퇴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루아침에 메이드로 발령난 내게 항상

"잘하고 있어" 라고 다독여주시고

시간 날 때마다 내층에 오셔서 체크아웃방 베드를 알게모르게 해 놓고 가신

나의 최고의 은인님!

본인의 몸도 좋지 않으셨음에도

언제나 여유와 배려를 잊지않으셨던

나의 선배님!

미팅시간에 능수능란하게 말로만 일하는 메이들에게 

"입 다물어"라고 호통치는 유일한 여장부!

내가 행엽언니와 일한 건 겨우 6개월.

그 시간들이 너무 짧아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 운좋게 6개월이라도 그런 대선배와 일할 수 있었다는 게 영광스럽기도 하다.

매일아침 8시.

메이드들의 티타임에서 우리는 행엽언니의 빈자리를 한동안 견뎌내야했다.



이미지: 사람 2명,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중, 음료, 테이블, 음식

이미지: 사람 1명, 웃고 있음, 앉아 있는 중, 실외

이미지: 사람 2명, 신발,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웃고 있음

이미지: 사람 1명, 서 있음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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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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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 차현숙. 박정희언니는 룸메이드파트에서 퍼블릭파트로 전환배치된 것이야말로 신의 한수라고 하신다.
누구나 자신이 오랫동안 하던일에서 다른 일로 변경되면
적응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다
햇수로 3년째인 지금도 퍼블릭파트는 이른 출근시간으로 힘겨워하신다
6시에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셔야하기 때문에 저녁 늦게까지 일정이 잡히면 부담스럽기도히고 피곤해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한수라고 하시는 이유는?
룸메이드파트에서 일했었을 때는 층에만 있었으므로
객실과 복도가 행동반경의 대부분이었으나
현관, 복도, 층별 화장실. 흡연실등 퍼블릭파트는
거의 호텔 대부분을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세종노조가 아닌 전직원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팀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기원, 차현숙, 박정희언니를 룸메이드에서 내쫓았을 때는 결코 계산에 넣지 못한 부분일것이다.

.이 세분은 근무하시면서 무노조, 연합노조 분들과
동료로 대화하시며 서종노조의 투쟁도 전하고
주명건이사장이 호텔에 오는 세종포럼 및 모임일정은 기본이고 각부서별 근황, 회사분위기등을 전방위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종노조 최고의 입체적인 연락병이자
호텔에서 일하는 용역을 포함한 전직원들의 상담역핣까지 톡톡히 해주시게 되었다.

나또한 시간이 지나자 전환배치의 장점들이 보였다.
교환실은 섬이었다
통신실이 같이있어 직원들에게도 통제구역이었다
직원비상연락망은 개인정보이기도 했다
같은팀인 프론트와 벨직원들은 우리를 알았지만
타부서 직원들은 우리 얼굴도 거의 몰랐다
나는 목소리로만 20년을 세종호텔에 존재한 셈이다.
한번은 직원식당의 직원 한분이 식당출입구까지 따리와
"신입사원이라 잘 모르나본데 잔반 남기면 안되요"라고
말했는데 그해 나는 이미 15년차를 넘길 무렵이였다

그래서 노조의 소식은 김상진위원장님이 일부러
교환실에 들러 전해주지 않으면 거의 몰랐다
요즘처럼 텔레그램과 카톡 단체방이 없었던 때는
노보만으로는 공감하기 더 힘들었더랬다.
마지막 교환직원 3명 남았을 때에는
2명이 세종노조를 탈퇴하고 사측노조에 가입해
교환실에 혼자 세종노조라 나는 '섬'이었다

룸메이드파트는 조합원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팀이고 근무스케줄이 교대근무의 교환과는 완전 달랐다
교환실의 퇴근이 3시 30분이거나 11시여서
총회연락받고 김상진위원장님께 연락해보면
항상 끝난 시간이어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룸메이드파트의 퇴근은 5시라
집회를 해도 총회를 해도 언제든 결합할 수 있어
동지들과 함께할 수 시간이 이전보다 휠씬 많아졌다.

처음부터 용기가 나지는 않았으나
메이드로 15방의 세팅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난 후
나또한 선전전, 집회, 총회 참석을 통해
노조의 집회신고 한번이라도 내고
선전전 한두시간이라도 힘을 보태고
집회에 연대오는 동지들과도 우정을 쌓아 나가게 되었다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듯이
나같이 무지한 자도 서로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김인희언니가
우리 박춘자언니가
우리 김린희언니가
우리 이기원언니가
우리 차현숙언니가
우리 박정희언니가
우리 김상진언니가
웃을 수 있는 그런 동지가 되어드리고 싶다
아!
인선이언니, 광선이 언니,기수언니.종혁이. 진수,
진정한 막내 진황이도 사랑해♡



이미지: 사람 3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모자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텍스트

이미지: 사람 8명,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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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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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할때 트레이너들이 이런 말을 하곤한다
'3개월을 버티면 몸이 변한다!'
일단 초보자라도 운동을 늘려가다보면
몸이 그 운동에 적합하게 적응한다는 의미일게다
어차피 룸메이드도 몸이 하는 일이라면
3개월을 버틸 수 있다면
나도 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개월동안
처음 내게 배정된 객실수 5개부터
거의 1주일에 하나씩 늘어 15개가 되었다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자신없고 공포스러워 새벽 3~4시에 잠을 깰 정도였으나
어쨌든 3개월부터는 15개씩 꽉꽉 채우게 됐다

내게 할당된 객실이 15개지만
그중 체크아웃으로 새상품 만드는 방이 10개믄 죽음이고
5개 미만이믄 널럴한 편이다.
타호텔은 트리플룸이나 투룸스타일의 스위트룸은
1.5개 또는 2방 정비한 것으로 계산해준다는데
세종호텔은 방타입에 상관없이 1개다.
한 층전체가 베드3개인 트리플룸이 대부분인 4층에서
트리플 객실 3개 체크아웃이던 날.
마치고 락카 내려오니 퇴근시간 1시간 지난 6시였다
그렇다고 연장수당을 주는 일은 없다

내가 발령난 날
세종호텔엔 퍼블릭이라는 새로운 파트가 생겼다.
신설파트에 다들 의문스러워하던 그자리.
나와 달리 룸메이드로 입사해 10년이상 일해오던
세종노조 이기원,차현숙,박정희씨가 전환배치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객실부서내 이동이라는 나와 달리
객실부에서 총무부 소속으로 부서이동까지 되었다

기존에 호텔의 복도.공용화장실.현관등
객실을 제외한 모든 호텔청소를 외부용역에 맡겨왔으나 회사가 정직원인 퍼블릭 세분에게 그 일의 일부를 맡겼다
아무준비없이 신설팀을 발령 내자
퍼블릭 세분은 유니폼, 사무실 등을 당당히 요구했다
총무팀은 퍼블릭팀의 요청대로 허겁지겁 유니폼부터 히트텍내복,사무실, 책상, 청소용품을 사대기 바빴다

너무도 당당히 요구하는 퍼블릭의 요구가 괘씸했을까?
퍼블릭의 주장대로 복도 청소원의 옷을 입혀도
빛나는 미모가 죽질않으니 시기질투해서일까? 
룸메이드 33명 중10명의 세종노조 조합원들이 회사의 부당함이 있을 때마다 미팅시간에 똘똘뭉쳐 항의하곤 하니 회사는 그 결속을 깨고 싶었던 것일까?
회사는 퍼블릭팀에 위생모자를 쓰게 했고
퍼블릭팀이 위생모자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자
범위를 확장해 룸메이드에게까지 위생모자를 쓰게했다

우리호텔 주방에서도 쓰지않는 그 위생모자는 
신비한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김치공장 모자인듯
빵집주방 모자인듯 한 그 모자를쓰는 것만으로도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마법!
회사는 퍼블릭을, 룸메이드를, 아니 세종노조를 
길들이기 위해 또는 기죽이기 위해
업무와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쒸운 거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세종노조가 아닌 메이드들은 그 원망의 화살을
모자를 쒸운 회사가 아닌 세종노조에게 돌리는 듯했다
'너네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보는거야'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2명, 음식,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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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람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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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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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교환에서 룸메이드로 발령이 났을 때
남편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때려쳐'라고 허세를 부리는 건 맥주한잔 할때 뿐.
실제로는 기존의 가계수입이 줄어두는 것을,
가장인 자신의 수입만으로 꾸려나가는 게 부담스러운 것을 숨기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알아서 해' 라고해야
자신의 의견이 아닌 '나의 선택'이 되기때문이다.
그러면 자신의 맘이 편한가?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친정쪽 가족모임이 있고 난 이후
메이드 3개월만에 6kg가 빠진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친척들이 발령당시 남편이 왜 사직하게 하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을 받으며 불쾌해했다.
아내가 룸메이드가 된 것에 대해
미국은 대학교수도 파트타임으로 빌딩청소를 한다는 말들로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그래도 생활은 계속 되어야했기에
나는 나를 메이드에 적응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메이드의 남편에겐
시간이 생겼다.
여유 시간이.

교환실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직종이라
16년을 3교대로 근무했고 인원이 줄어든 후에도
4년을 2교대로 근무했다.
야근은 아침 8시에 끝났고
저녁근무는 11시에 끝났다.
내가 일하는 동안 그는 우리 집을 지켜왔었다.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씻기고 저녁먹이고 재우고
다음날아침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고
젊은 맞벌이부부의 전쟁같은 육아를 '함께' 해왔다
다른 맞벌이부부들처럼.
20년동안.

그러나 메이드의 퇴근시간은 5시
늦어도 6시면 나는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남편으로서는 결혼 후 처음으로
저녁시간의 자유가 생긴 셈이다.
아이들 핑계로 눈치보던 회식도 자유롭게 참석하고
몇 시에 귀가하던 집에는 애엄마가 있다.
룸메이드가 된다는 것은 뜻하지않게
나의 독박육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녁시간의 자유는 그를 다시 싱글로 만들었다
결혼 전 취미생활를 다시 시작했다.
마이 볼을 사 천공해 볼링장 락카에 두고
월요일은 클럽리그, 수요일은 정모. 금욜은 불금!
틈틈히 연습도 하고 내기게임도 하고
항상 뒤풀이도 하고 
저녁시간에 우리집엔 점점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져갔다

단체톡하는 그의 클럽에는 20대 여자들도 있고
뮤지컬 배우등 연예인도 있어 더욱 즐거워지셨다
볼링용품 뿐 아니라 옷도 자주 사야했고
퇴근시간 '늦어' 톡하나 보내오고 안들어오면
나로서는 속수무책.
나의 노동이 그를 자유롭게 했다는 피해의식도 생겼으나
낮에는 한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고
퇴근해서는 취미/사교활동하는 남편대신
내 아이들을 지켜야했다
나는 엄마니까
엄마니까........



이미지: 사람 3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신발

이미지: 사람 2명, 사람들이 서 있음, 반바지, 신발, 하늘, 실외, 자연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어린이,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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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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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첫 배당된 11층A코너

1월이라 아침마다 호텔복도끝에서 남산1호터널을 내려오는 방향으로 해돋이를 볼 수 있었다

교환 20년동안 창문이 없는 사무실에서 근무한 내게

그건 굉장히 신기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가끔 눈오는 날 남산방항 객실창을 통해

남산에 눈이 소복이 쌓이거나

눈폭풍이 폴아쳐 회색도시로 변하면

창문없는 사무실 20년 경력자는

그 모습이 또 신기해 몇번이나 카메라를 들곤 했다.

그분은 얼굴만 알지 이름은 커녕 부서도 모르는 분이었다

가끔 복도에서 꾸벅 인사는 나눠도

심지어 직원인지 용역인지조차 몰랐다

그 분의 일은 린넨이었다

메이드들이 걷어낸 침대시트와 커버, 타월등을 정해진 시간에 수거해 가시는 게 그분의 업무였다

현재 기관실에서 30년 근무한 김기수 조합원이 전환배치되어 근무하는 부서이기도 하다

발령 한달쯤 지날무렵

객실로 복도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내게

그분이 처음으로 말을 건네주셨다

"이제 좀 할만해?"

"아뇨. 저 진짜 못해요."라고 대답했던 것같다

"괜찮아. 

그러면서 늘어.

일할 수 있으면 된거야.

우리같은 늙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괜찮아"

그렇게 가시는데

갑자기 다정한 말을 들어서일까?

괜찮아.....라고 말해주어서일까?

일할 때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하루쯤 지나 '괜찮아'가 떠올라 혼자 울컥...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버렸다

잘 모르는 분의 한마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래

나는 아직 괜찮다!!!

그분또한 세종노조 조합원이셨다

로얄호텔에서 일하다가 정직원이었던 부서가 용역화되어

세종호텔에 오셔서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

세종노조의 38일 파업을 끝까지 지켜내어 정규직을 쟁취해

정년퇴임까지 이루신 김진하조합원이었다.

그렇게 세종노조는

많은 수를 복수노조법이 시행되자마자 사측이 만든 연합노조에 뺏기고

세종노조는 탈퇴하나 어느 노조에도 가입않는 무노조,

정년퇴임 또는 퇴사로

조합원수는 점점 더 줄어갔다



이미지: 하늘, 구름, 실외, 자연

이미지: 사람 7명, 사람들이 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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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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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내게 첫 배당된 층은 11층A코너.

한코너당 대부분 10개의 객실이 있다.

물론 처음 1주일정도는 내객실도 내가 몰라

다른 메이드에게 배정된 객실문을 여는일도 허다했다

내객실조차도

객실이 원베드인지 트윈인지 객실타입도 몰랐고

트윈이라도 싱글인지 더블인지 몰라

청소하는 시간보다

메이드카와 창고에 잘못 고른 시트를 들고 

복도에서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손님이 객실내에 계시는 지 외출 중인지 체크아웃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인디게이터조차

눈에 팍팍 안들어왔으니 물어볼 사람이라곤 층짝.

층짝인 B코너 선배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했다.

그녀는 회사에선 나보다 후배이고 4살 아래였지만

영업부출신이라 승진이 빨라 나보다 직급이 높았고 룸메이드로 전환배치된 지 6년되는 선배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층의 상황은 그녀에게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교육이 끝나고 층에 배치받고서야

세종노조 노조원, 나의 동지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파업을 함께했던 동지들이 이제 기꺼이

나의 팀동료가 되어주셨다.

커피한잔 하고 일 시작하자시며

아침마다 구내전화로 핸드폰으로 불러주셔서 

외로울 겨를은 없었다.

똘똘뭉친 동지들이 점심시간에도 시간맞춰 함께식사하고

식사후엔 노조사무실에서 커피마시며 

각자의 업무 노하우도 공유하고,

서로의 고충도 들어주며 격려해주셨다.

실제적 도움도 너무 많이 주셨다.

3년째 장기투숙객의 객실이 내게 처음 맡겨졌던 날 아침.

컴플레인이 심한 고객이라고 얘기듣던 터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게 카톡으로 연락하면 함께 

들어가 주겠다고들 해주셨다

하지만 그 분들도 각자의 층에서 15방씩의 자기몫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차마 연락할 용기는 없었다.

어차피 각자에게 배당된 방은 혼자 해결해야하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혼자 감당하기로 했다

새로운 컴플레인이 있던 직후라 인디게이터를 

주시하고 있다가 외출확인후 돌격!

때마침 우리층에 청소왔던 조합원님이 옆객실에서 

내가 메이드카 끄는 소리듣고 다른 조합원님에게 연락해 객실하나에 메이드가 3명씩이나 들어가게 되었다

한분은 욕실을 청소해주셨고, 

나와 다른분이 함께 침대의 시트를 교체.

청소기를 돌린후 

때마침 하우스키핑 사무실의 조합원까지 초보메이드가 걱정되어 올라와 최종점검까지 해주셨다

우리 4명이 마무리한 후

장기투숙객님은 그 층을 맡는 두달동안 내게는

컴플레인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나의 구둣방요정님들은 그 뒤에도

자신의 층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올라와

체크아웃한 객실에 베드세팅을 해놓고 가시곤 하셨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난 제시간에 퇴근도 못했을 것이다

노조원님들은 동료이면서 수호천사같았다.

첫 한달을 그렇게 버텼다

그 분들의 도움없이 아마 나는 한달을 못 견뎠을 것이다.

그 분들이 내게 한달을,

아니 10년을 버틸 힘을 주셨다.

인생의 한 고비에서 때로는 천사같고 때로는 엄마같은

나의 동료이자 동지들이 있어

그누구보다 운좋은 룸메이드였다

그 분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나또한 갚으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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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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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단 1회 욕실청소하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맡은 객실을 따라 들어간 나는

욕실전체 청소와 세팅을 전담해야했다.

처음엔 청소하고 필요한 물품을 넣는데에

거의 한시간은 걸린 듯하다

보통의 룸메이드가 전체객실을 새로 세팅하는데

두방은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첫날 13개의 욕실을,

둘째날까지 26개의 욕실을 청소하고

허리와 어깨엔 파스가 덕지덕지 붙었다.

세면대 위에 올라가 전면거울을 천정까지 닦고

깊숙한 욕조에 엎드려 닦는 일은 근육통과 몸살로 이어졌다

남편과 만나 함께 퇴근길에 들어간 순대국 집에서

탁자만 바라보다가 술이 나오자,

안주없이 연달아 소주 반병쯤 혼자 마시고

"왜? 

내가 이 일을 해야하는 지 모르겠어"

그렇게 시작한 넉두리는

"어제 오늘 26개의 변기를 안고 살았어

내가 이걸 왜 하냐구"

밥이 나왔지만 몇잔인지 모를 소주잔만 계속 퍼부었다

일단 시작되자 눈물범벅이 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려구...우리엄마는 대학보내구....꺼이꺼이...20년을....어헝"

작은 순대국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한마디 없는 남편이

밥먹으라 숟가락을 쥐어줬다

술마신 다음날 새벽

나도 모르게 잠이 깼다

새벽에 스마트폰으로 은행 알람이 울리는 소리였다

월급이 계좌에 입금되었다.

'아...돈이구나!'

'돈벌기위해 일하는 거였지!

게다가 아직 월급은 10원도 줄지 않았다!'

돈이 나를 위로했다.

그래 해보자!

3개월만 버텨보자!

그래도 못하겠으면 그때 그만두자!

그런 마음으로 메이드 3일차를 더 씩씩하게 출근했다

회사에서 만든 연합노조 소속인 그녀가 의도적인지

그녀자신의 특유의 고집인지

그녀는 교육 첫 주 5일동안 오로지 욕실청소만 시켰다.

상대적으로 같은 날 룸메이드 발령받은 교환실 동료는

3일 욕실청소후 

4일째 베드 메이킹을 배우고

5일째에는 객실 3개를 스스로 풀세팅했다고 말해주었다.

내 사수는 나를 제대로 가르칠 용의가 있는지

엿 먹이려는지 의심스러웠으나 알도리가 없었다.

2주차에 그녀는 내게 단 3일 베드 메이킹을 가르쳤고

오히려 그녀의 휴무일에 나를 임시담당했던 다른 선배가 베드 메이킹만 집중해서 친절히 알려주었다.

한달쯤 지난 후

내사수였던 그녀에게 오해는 없어졌다

베드메이킹은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베트메이킹의 각은 타월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리털을 벗겨내고 이불 4각의 모서리을 잘 맞춰야 

침대각이 살았고

마찬가지로 배게도 베겟닛이 제대로 끼워져야 각이 살았다.

선배들이 세팅한 베드는 보기엔 예뻐도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반복밖에 없었다.

그건 아마도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말 그래도 연륜.

그걸 아는 사수가 베드메이킹에 연연하지 않고

욕실세팅과 일의 순서에 더 집중시켰던 듯하다.

타호텔에서 일하다가 우리호텔에서 일하는 촉탁분들은

교육과정 따로없이 어메니티와 미니바만 알면 

이틀 후 바로 기본 13개씩 객실이 배당되지만

타부서에서 온 우리 3명에게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2주교육 후

5개의 객실배당!

6개, 7개, 8개....일주일에 한방씩 그 수를 늘려갔다.

일부 메이드와 촉탁들은 전환배치 3명에게 너무 천천히 청소할 객실을 늘려간다고 뒷말이 많았지만

1년 중 가장 비수기인 1월.

객실이 전체에서 50%밖에 안 찬 건 

우리에겐 행운이었다.

적응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이미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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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첫날.

내게 정해진 사수는 59세.

울호텔 룸메이드 최고근속자인 27년차의 그녀였다.

(시간이 좀 지나고 들은 이야기지만

나를 그녀에게 배정한건 하우스키핑 사무실에 근무했던

지금은 퇴사한 세종노조 노조원님의 륵별한 배려였다)

농협은행 지점장이었다는 그녀남편의 간판에 

도도하기 그지없다는 소문이었지만

은퇴를 1년 앞둔 그녀의 여유와 포스, 

팀장이 객실비품 교체할때도 상의한다는 유일한 메이드

그녀의 자존감은 메이드 중 지존이었다.

그녀의 담당층인 14층

메이드 창고를 찾아가는 호텔복도는

교환실에서 전화만 받았지 층에 거의 올라가 본 적없는

내게는 호텔에 20년을 근무하고도 낯선 곳이었다

직원식당에서 가끔 인사만 나누던 그녀.

이름조차 처음 알게 된 아침.

내게 처음 맡겨진 일은 타월접기.

린넨카트에 실어보내 각층으로 온 그날의 타월.

카트안에는 타월뿐 아니라 시트도 있었다.

침대사이즈별로 싱글,슈퍼싱글, 더블, 킹사이즈의 

시트가 있고 커버, 그리고 베겟닛!

타월은 대타월, 중타월,소타월,발매트가 그것이었다.

메이드의 아침 첫업무는

자신이 세팅하게 될 객실의 재실/체크아웃을 확인 후,

시트와 타월 정리로 시작되었다.

타월 개는 건 말그대로 '각'

기본적으로 타월개는 방법에도 

나름들의 개성들이 묻어났다

대충대충 설렁설렁 접는 메이드.

꽉꽉 눌러가며 '각'을 잡는 메이드.

아예 안개키고 메이드카트에 올려

타월세팅할 때 그때서야 서서 대충접는 메이드.

자신이 일할때 능률적인 방식으로 제각각이었으나

속담처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침준비를 꼼꼼히 하는 사람은 모든일에 꼼꼼했고

대충 준비하거나 안하는 사람은 다른일조차

비슷한 듯해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근무첫날 타월을 개며

27년차의 내사수는 말했다.

"호텔 룸메이드는 새상품을 만드는 사람이야.

전날 고객이 사용한 상품을

싹 뒤집어 새상품으로 만들어 내는거지.

판촉/예약에서 객실을 예약받고 

제아무리 프론트에서 객실배정을 한다해도

즈들이 새상품을 만드나?

룸메이드가 다하는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나름의 자부심이 펄펄 묻어났다.

전환배치 당한 내입장에선

'쫓겨났다' 라는 생각이지만

스스로 룸메이드를 선택해 27년간 일해 온 그녀에게

룸메이드는 '전문직종'이었다.

그녀의 포스에 나는 군대라도 입대한 듯 '네', '아니오'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의 교육 2주가 마치 군사교육을 받는 듯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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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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