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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171023] 지난해 5월 정독도서관에서 생긴 일

정옥순 국제식품연맹 한국조직담당


원문 링크 > 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73096#058n



[세종호텔노조의 6년] 연대주점을 준비했습니다


서울 명동의 세종호텔에는, 2012년 초 38일 간의 로비점거 파업 이후 수년 동안 계속된 구조조정과 노조탄압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세종호텔노동조합 십여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수년 간 이어진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300명에 가까웠던 세종호텔 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희망퇴직’으로 퇴출된 정규직의 빈자리는 도급‧용역‧외주‧촉탁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과장급에서 계장급으로 확대된 성과연봉제는 2017년 1월부터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고, 세종호텔의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고강도‧장시간‧저임금 노동으로, 권리 없는 불안한 노동으로 내몰려 왔다. 그 기간에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3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노동자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지난한 시간을 회사와 싸워왔다. 지난해에는 공동투쟁본부가 꾸려졌다. 그래서일까. 그 결과, 세종호텔에서는 6년 만의 교섭 국면이 열렸다. 오는 25일에는 연대 주점도 열린다. 지난 6년 동안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그 싸움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2016년 5월이었다. 과거 재수생 시절, 롯데호텔노조에서 일했던 시절, 이따금씩 공부하러, 책을 보러 다녔던 정독도서관 정원에서 잉태된 일이다. 

2008년 이후 IUF(국제식품연맹) 선출직 임원이 약 8년 만에 한국에 왔다. 그러다보니 다닐 곳도 만날 사람도 많았다. 서울 시내를 돌다가 잠깐의 짬을 내서 산책 겸 정독도서관에 갔다. 어쩌다 세종호텔 얘기가 나왔다. 2012년 초 파업 당시 IUF의 연대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회에 연대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도서관 정원 곳곳에서 만물의 기운이 소생하는 가운데, 다소 쓸쓸한 의견을 전달했던 것 같다. 

▲ 세종호텔 목요집회 후 참여자들과 함께. ⓒ정옥순


2006년 6월부터 IUF에서 일하는 동안, 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다국적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국제적 장치(tool)를 활용해, 초국적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노사관계 부정 등 노동권 침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괜찮은 효과를 경험했던 터지만, 국내기업의 부당한 노사관행에 대한 국제적 제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대화 당시, IUF 아태지역총장직무대행(지난해 10월 열린 IUF 13차 아태지역총회에서 정식 선출됨)이,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CFA) 제소에 대한 의견(일부 핵심협약에 대해서는 비준여부와 상관없이 제소가 가능함; 세종호텔 건은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과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대한 원칙에 해당함)을 냈다. 

'될까?' 라는 의구심의 다른 한편에 전구가 반짝! '앗, 다른 식의 지지/지원 방식이 있겠구나!' 그렇게 세종호텔 노사분규를 방치하고 심지어는 은근 지원하는 대한민국 노조법이 가진 결점에 대한 문제를 ILO CFA에 제소하게 됐다. 물론 이건, 제소에 따른 여러 단계 중 1단계 결정이 있은 뒤 이렇게 됐다는 거다. 1단계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와 온라인 소통 등이 있었다. 

2016년 6월, ILO CFA 제소를 위해, IUF 한국가맹조직인 서비스연맹, 민주노총/서울본부 법률담당, 세종호텔노조 당사자, 필자 등으로 팀이 꾸려졌고, 제법 긴 초안을 작성 번역 후, IUF 본부 담당자에게 보냈다. 내용 이해를 위한 본부 담당자의 고충이 느껴졌고, 결국 초안은 다시 작성됐다. 그 이유에 대해 본부 담당자는, (동지적 애정과 신뢰를 듬뿍 담아) 호텔사용자의 백화점식 노조탄압 만행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있지만,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법이 이런 탄압을 가능하게 했다'는 논리가 부족하다고 설명해줬다. 왜냐하면 ILO는, OECD 가이드라인이 사용자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정부의 법률체계가 어떻게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못한지를 심의하고 권고하는 역할을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피상적으로 글로 이해하는 것과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얻는 경험치가 다르듯, ILO 제소가 아니었다면 체감하지 못했을 내용이다. 그래서 세종호텔노조에 고맙기도 하다. 제소 과정에서 의외의 실무 폭탄에 버겁기도 했지만,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 내겐 또 다른 배움의 기회가 됐으니 말이다. 


▲ 세종호텔 목요집회, 연대발언하는 IUF 아태지역총장직무대행과 통역하는 필자. ⓒ정옥순


약 7개월의 준비와 국내/국제 상호 소통 및 이해 과정을 거쳐, 올해 1월 16일 IUF가 서비스연맹을 대표해, 세종호텔 노동기본권 침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를 ILO CFA(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제소했다. 이후, 6월에 열린 106차 ILO 연차총회 중 열린 CFA 회의에서 '세종호텔 관련 한국정부 제소'가 신규로 접수됐음을 확인했고, 이에 따라, 이 건 관련 한국 정부에 답변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본부 담당자에 따르면, 가능성에 무게를 둘 경우 10월 26일에서 11월 9일 열리는 331차 ILO 이사회 기간에 CFA 회의가 예정돼 있어, 이때 세종호텔 건을 다루고, 11월 CFA 회의 보고서가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11월 보고서가 세종호텔 건에 대한 최종 결론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안의 복잡성을 미뤄 보건대 최소 1년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준 상태다. 큰 변수가 없다면 원컨대, 11월에는 세종호텔 관련 ILO 제소에 대한 심의 보고서를 받게 되면 좋겠다. 또한, 노조에 유리한 내용이 나와, 현재 진행되는 노사간 교섭에 괜찮은 지렛대가 되기를 바래본다. 

10월 25일 세종호텔노조가 연대주점을 한다. 몇 년 전 남영동에서 했을 때, IUF 한국 가맹조직들에 티켓 품앗이를 요청하고, 나도 제법 샀다. 당시 연대주점에서 우연히 만난 학교 선배에게 남아 있던 티켓을 투척했고, 그게 또 끈이 돼 자주 보게 되고, 지난해 탄핵 국면에서 광화문 블랙텐트에서 열린 선배 극단의 공연도 봤다. 아마도 올해 있을 세종호텔노조 연대주점에서도 우연의 기회로 또 다른 인연의 장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참고로, 나는 노동자연대의 임준형 씨를 꼬셔서 듀엣 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또 재능노조의 여민희 씨와는 타로/좌파명리학 상담-수익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하여 스스로 내게 붙인 별명이 있으니, 일명 '세종노예'라고! 물론 억지로 하는 건 아니다. 공연은 내가 노조에 우겨서 하게 된 것이고, '점술' 코너는 얼결에 엮었다. 

많이들 오셔서 즐기고 주머니 가볍게 비우고 가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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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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