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171021] 이렇게 작은 노조가 무너지지 않고 버틴 이유

박창용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원문 링크 > 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72933#058n



[세종호텔노조의 6년] 연대주점을 준비했습니다


서울 명동의 세종호텔에는, 2012년 초 38일 간의 로비점거 파업 이후 수년 동안 계속된 구조조정과 노조탄압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세종호텔노동조합 십여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수년 간 이어진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300명에 가까웠던 세종호텔 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희망퇴직’으로 퇴출된 정규직의 빈자리는 도급‧용역‧외주‧촉탁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과장급에서 계장급으로 확대된 성과연봉제는 2017년 1월부터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고, 세종호텔의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고강도‧장시간‧저임금 노동으로, 권리 없는 불안한 노동으로 내몰려 왔다. 그 기간에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3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노동자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지난한 시간을 회사와 싸워왔다. 지난해에는 공동투쟁본부가 꾸려졌다. 그래서일까. 그 결과, 세종호텔에서는 6년 만의 교섭 국면이 열렸다. 오는 25일에는 연대 주점도 열린다. 지난 6년 동안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그 싸움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세종호텔 앞에서 집회나 선전전을 하다보면, 관심을 갖는 분들을 이따금씩 마주치게 됩니다. 그 중에는 관심이 너무 큰 나머지, 이런 거 왜 하냐, 할 일이 그리 없냐, 열심히 일했으면 이렇게 될 리가 없지 않느냐, 왜 회사 말을 듣지 않느냐, 이렇게 사려 깊고 친절한 질문을 걸어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사려 깊음과 친절함에 감동하여 욕지거리를 한 사발 장전하다가도, '그래, 나의 조국은 아직 이런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아웅다웅 부딪히며 살아가는 나라였지' 생각합니다. 그러곤 ‘성과연봉제 폐지, 부당해고 강제전보 철회, 불안정노동 철폐, 노조탄압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을 가리키며 점잖게 보내드립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걸어오는 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마음이 예전 같지 않게 나태해질 때 즈음이면 바짝 정신을 차리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투쟁'하는 사람이 초심을 잃으면 안 되는 법이지요.


▲ 세종호텔 목요집회. ⓒ박창용


세종호텔은 제 첫 투쟁현장입니다. 그리고 세종호텔 앞은 제가 첫 집회, 첫 선전전, 첫 팔뚝질, 첫 구호, 첫 노동조합, 첫 노상 취식, 첫 노상 음주, 첫 현수막 설치 등을 경험한 곳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여태 겪지 못한 삶을 새롭게 더한 공간이라고나 할까요.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조합원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런 삶을 살게 될 줄 몰랐다’는 고백이 오르내리곤 합니다. 예, 그렇죠. '싸운다'는 것은, 내 삶에서 여태 겪지 못한 새로운 삶을 하나 더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들보다 더 많은 삶은 살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더 많이 살아내기에 더욱 고된 삶이기도 할 테죠. 더군다나 2012년 파업 이후 정규직 감소와 복수노조 등으로 작아진 세종호텔 노동조합을 꾸려나가는 운영위원과 조합원 들이 감당해야할 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울 것입니다. 게다가 세종호텔 노동조합에는 가사 노동을 전담해야하는 '아주머니' 조합원들이 많습니다. 회사 일하랴, 집안 일하랴, 노조 일하랴, 예전에 비하자면 두 배씩 치열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지요. 각자의 신념과 의지가 서로 다를지언정 굳건하기에, 이렇게 작은 노조가 할 일 다 하면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좀체 쉬는 날 없이 선전전과 집회를 진행하다보니 참 많은 분들이 싸움에 함께하고 계신답니다. 노동조합과 상관없는 직장인도 계시고, 노동 단체, 지역 단체, 정당도 곁에 있습니다. 특히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다른 노동조합에서 오시는 분들이 항상 자리를 지키십니다. 가수도, 시인도, 밥차 식구도, 연구자도, 종교인도 세종호텔 앞에서 깔판을 깔고 앉아 함께 외치고 먹고 마시고 웃습니다. 집회를 찾아오신 면면들을 살피다보면, '아, 오늘 세종호텔을 물리적으로 접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위험한 유혹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호텔을 접수할 기회를 노릴 따름입니다.


▲ 집회 연대 준비 중인 밥차와 주명건 회장 얼굴이 담긴 피켓. ⓒ윤가현


이제 세종호텔 앞에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선전전을 하다보면 우리 주명건 세종호텔 회장님의 용안을 새긴 피켓이 유독 자주 날아가는 통에 골치가 아픕니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우리 주 회장님이 길바닥에 엎어지거나 널브러져 있어요. 미운 정이 워낙 들다보니 그 모습에 참담한 마음으로 피켓을 바로 세웁니다. 우리 주 회장님께서 인간으로서 어서 바로 세워져서, 명동거리에서 피켓으로 휘날리는 일이 없어야할 텐데 말입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변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우리를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 회장님께서 어서 과오를 바로 잡고 정도(正道)의 품에 안기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사소한 수고로움이 필요하겠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성과연봉제 폐지하시고, 꾸준하게 늘려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시고, 부당한 해고와 강제 전보를 철회하시면 될 일입니다. 무능한 경영진과 허수아비 노동조합도 일선에서 물리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본인도요. 바뀐 정권의 눈치를 보며 교섭인 듯 교섭 아닌 교섭을 고집하는 졸렬함을 버리고 성심성의껏 교섭에 임하는 것 그 첫걸음일 것입니다.

자, 이제 비로소 본론을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궁서체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세종호텔 노동조합에서 연대주점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싸우고 있는 개인과 단체도 힘을 모았습니다. 일급 호텔 셰프가 준비한 메뉴, 일급 호텔 직원의 서비스 - 무엇보다도 이러한 진심과 정성을 어디서 느껴보겠습니까. 비가 오면 우의를 입고, 날이 추우면 옷을 껴입으며, 집회와 선전전으로 5년 넘도록 지켜온 세종호텔 앞에서, 세종호텔 노동조합이 변함없이 열심히 ‘투쟁’할 수 있게 응원을 보내주세요. 직접 오시어 온기와 취기를 나누셔도 좋고, 멀리서 숫자를, 이왕이면 큰 숫자를 입력하셔도 좋고,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하고 계신 것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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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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