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노조 복원을 위한 투쟁에 응원을

김상진 세종호텔노조 해고자

 

"위원장 임기 끝나면 회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위원장을 계속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세종호텔 노조위원장 임기가 끝나가던 2014년 어느 날, 세종호텔의 한 직원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내 안위를 위해서 위원장 자리를 이용하고 싶지 않아 쓴웃음으로 넘겼습니다. 

회사가 현장으로 복귀한 노조 전임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는 단체협약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친사측 노조가 교섭대표가 되면서 회사와 합의해 이를 폐지했습니다. 친사측 노조 입장에서는 회사가 알아서 지켜줄 것이니 이런 협약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노조 위원장 9년의 임기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2015년 1월 12일 회사는 연회장 웨이터로 전보 발령했습니다. 그 직원의 우려는 바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곧이어 10퍼센트 삭감된 연봉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회사는 친사측 노조와 합의해 회사의 입맛대로 최대 30퍼센트까지 연봉을 삭감할 수 있도록 성과연봉제를 합의한 이후였습니다. 모든 것은 회사가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다 같은 ‘호텔리어’지만, 업무마다 전문 분야가 있어 부서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홍보팀에서 연회장 웨이터 발령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이것은 전임 위원장에 대한 분명한 보복성 발령이었습니다. 회사는 세종노조 열 한명의 조합원에게도 전보 발령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는 업무만을 떼어 신설 부서를 만들고 조합원들만 표적 전보하거나, 십 수 년 동안 해 오던 업무와 전혀 다른 부서로 강제 전보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노조 탄압이었습니다.  

회사의 부당한 발령에 거부하고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원래 근무 부서인 홍보팀으로 출근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책상은 한쪽 귀퉁이로 옮겨졌습니다. 어느 날은 그 자리에 짐을 잔뜩 쌓아놓고 앉을 수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갖다놓고 자리를 만들어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는 사무실 자물쇠를 바꿔버려 더 이상 사무실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출퇴근 확인을 위해 사용하는 사원증이 먹통이 되었습니다. 또 며칠 후에는 식당 직원들을 앞세워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회사에서 더 이상 출퇴근 확인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외부인이 되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나의 현실이 돼 있었습니다. 조합원들과 조금 더 일하기 좋은 호텔을 만들겠다고, 함께 행복하자고 나서서 행동하고 투쟁한 대가를 회사는 톡톡히 치르게 할 셈이었습니다.  

88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비정규직 호텔리어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1992년 세종호텔에 입사해 객실관리와 경리팀, 프론트를 거쳐 당직지배인과 홍보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임금과 처우가 메이저급 호텔만 못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 승진도 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20대와 30대를 다 보내고 40대 중반이 된 나에게 회사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9년 동안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아 민주노조로 전환하고 파업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쟁취하며 부끄럽지 않게 투쟁했는데, 혹시나 나 때문에 조합원들이 더 힘들어진 것은 아닌지, 함께 싸우는 조합원들에게는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분하고 원통하고 서글펐습니다. 2015년 2월이 되자 회사는 일방적으로 삭감했던 월급조차 끊었습니다. 

매일 호텔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하며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렇게 투쟁에 나서자 회사는 “원하는 부서를 말하면 보내 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혼자만의 부서이동은 필요 없었습니다. 강제 전보된 조합원 모두 원직 복귀를 요구하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회사는 곧 징계 위협을 담은 내용증명을 수차례 집으로 보내 가족들을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방해금지가처분 소송을 내고 호텔 앞의 집회·시위의 자유조차 막으려고 했습니다. 

부당한 전보발령을 거부하며 싸운 지 1년 3개월이 지난 2016년 4월19일, 회사는 ‘무단결근’과 ‘직무명령 불이행’으로 징계위원회를 열고 해고했습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에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아무도 저희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보수화된 법원은 "경영상의 필요한 정당한 인사권 행사이고, 이를 거부한 징계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지난해 9월 대법원마저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회사는 노조와 해고자에게 1700만 원 소송비용까지 청구했습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년이 지났지만, 해고 노동자의 처지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부당노동행위 의심 사업장으로 지목돼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아도 회사의 태도에서는 변화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계약해지, 강제전보, 임금삭감, 징계, 해고…. 이 모두 법원이 인정한 세종호텔 사측의 권리가 됐지만, 탄압받는 노동자들에게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참아내야 할 고통이 되었습니다. 이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세종호텔노조는 9년째 묵묵히 버티며 싸우고 있습니다. 

세종호텔 주명건 회장의 사돈으로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농단을 주도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이 구속된 후 회사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난 1월 회사는 강제전보 일부를 철회하고 조합원들을 원직으로 복귀시켰습니다. 세종호텔노조의 투쟁과 연대의 힘이 거둔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지난 5월 22일, 세종호텔노조는 장기 투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호텔 앞에서 무기한 농성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해고자 복직과 남은 강제전보 철회, 차별적인 임금 삭감분 보전이 우리의 요구입니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얻는 상처이고 고통의 눈물입니다. 

오늘(6월5일)로 세종호텔에서 해고된 지 1143일입니다. 이제 다시 호텔리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단결하고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하게, 흘린 눈물을 닦고 웃는 얼굴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승리의 기쁨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목마를 타고 여러 집회에 따라다니던 꼬마가 벌써 고3이 됐습니다. 투쟁하는 해고자 아빠를 둔 아들은 남들처럼 사춘기로 속 한번 썩이지 않았습니다. 아빠를 걱정하며 혼자 속앓이를 하며 보냈을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해고자 아빠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한 아빠로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예전처럼 머리도 기르고 예전 호텔리어의 모습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는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었습니다. 소수노조가 당당하게 승리해 민주노조를 굳건히 세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 세종호텔 앞에서 무기한 천막 농성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시간에 (단, 밤 11시 이전) 지지 방문해 주세요!
문의: 세종호텔노조 해고자 김상진 010-7226-5934

■ 매일 세종호텔 앞에서 팻말 시위와 홍보전을 진행합니다.
아침 8:00~9:00 / 점심 11:30~12:30 / 저녁 5:30~6:30

■ 매주 목요일 ‘세종호텔 투쟁 승리를 위한 집중 집회’에 참가해 주세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세종호텔 앞(명동역 10번 출구)

 

■ 세종호텔노조 투쟁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 계좌: 하나은행 113-910271-66107 곽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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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공투본

노동자의 보람과 삶과 존엄을 짓밟는 #주명건 회장의 세종호텔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 함께 맞서 이겨내기 위해 2016년 6월 9일부터 ‘해고·강제전보 철회!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 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세종노조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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