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환에서 룸메이드로 발령이 났을 때
남편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때려쳐'라고 허세를 부리는 건 맥주한잔 할때 뿐.
실제로는 기존의 가계수입이 줄어두는 것을,
가장인 자신의 수입만으로 꾸려나가는 게 부담스러운 것을 숨기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알아서 해' 라고해야
자신의 의견이 아닌 '나의 선택'이 되기때문이다.
그러면 자신의 맘이 편한가?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친정쪽 가족모임이 있고 난 이후
메이드 3개월만에 6kg가 빠진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친척들이 발령당시 남편이 왜 사직하게 하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을 받으며 불쾌해했다.
아내가 룸메이드가 된 것에 대해
미국은 대학교수도 파트타임으로 빌딩청소를 한다는 말들로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그래도 생활은 계속 되어야했기에
나는 나를 메이드에 적응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메이드의 남편에겐
시간이 생겼다.
여유 시간이.

교환실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직종이라
16년을 3교대로 근무했고 인원이 줄어든 후에도
4년을 2교대로 근무했다.
야근은 아침 8시에 끝났고
저녁근무는 11시에 끝났다.
내가 일하는 동안 그는 우리 집을 지켜왔었다.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씻기고 저녁먹이고 재우고
다음날아침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고
젊은 맞벌이부부의 전쟁같은 육아를 '함께' 해왔다
다른 맞벌이부부들처럼.
20년동안.

그러나 메이드의 퇴근시간은 5시
늦어도 6시면 나는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남편으로서는 결혼 후 처음으로
저녁시간의 자유가 생긴 셈이다.
아이들 핑계로 눈치보던 회식도 자유롭게 참석하고
몇 시에 귀가하던 집에는 애엄마가 있다.
룸메이드가 된다는 것은 뜻하지않게
나의 독박육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녁시간의 자유는 그를 다시 싱글로 만들었다
결혼 전 취미생활를 다시 시작했다.
마이 볼을 사 천공해 볼링장 락카에 두고
월요일은 클럽리그, 수요일은 정모. 금욜은 불금!
틈틈히 연습도 하고 내기게임도 하고
항상 뒤풀이도 하고 
저녁시간에 우리집엔 점점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져갔다

단체톡하는 그의 클럽에는 20대 여자들도 있고
뮤지컬 배우등 연예인도 있어 더욱 즐거워지셨다
볼링용품 뿐 아니라 옷도 자주 사야했고
퇴근시간 '늦어' 톡하나 보내오고 안들어오면
나로서는 속수무책.
나의 노동이 그를 자유롭게 했다는 피해의식도 생겼으나
낮에는 한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고
퇴근해서는 취미/사교활동하는 남편대신
내 아이들을 지켜야했다
나는 엄마니까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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